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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고명재 시인의 ESSAY
고명재 시인

이제는 없지만 아직은
거기도 마음에 있어요

이제는 없지만 아직은
거기도 마음에 있어요

고명재 시인은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그리고 지금도 대구의 서쪽과 동쪽을 오가며 긴 하루를 보낸다. 대구에서 걸었던 수많은 날, 수많은 길들을 웃으며 회상하며 짐작하며 또 다른 대구를 만난다.

글 · 고명재 (시인)

고명재 시인은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그리고 지금도 대구의 서쪽과 동쪽을 오가며 긴 하루를 보낸다. 대구에서 걸었던 수많은 날, 수많은 길들을 웃으며 회상하며 짐작하며 또 다른 대구를 만난다.

글 · 고명재 (시인)

#흙길

옛사람들의 순정한 믿음을 좋아한다. 한 사람의 이력이 흙에서 시작되어 흙으로 돌아간다는 믿음.

이제 주변은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가득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땅이나 쌀을 생각하면 흙부터 떠올리곤 한다. 저기 저 공터는 민들레가 흐드러지던 곳. 저기 저 언덕은 강아지를 묻었던 자리. 저기 저 뒷동네는 우리 할머니랑 쑥을 캐고 이마에 땀을 훔치던 자리. 나는 대구의 흙을 밟으며 자랐다. 흙에서 자란 꽃과 들풀, 나무를 보면서 대구의 뜨거운 여름을 지났다. 포장되지 않아서 아직 흙이 깔려 있던 신천변을 강아지와 힘껏 달릴 때 자박자박 흙 밟는 소리가 귀에 울렸다. 그 강아지를 보내고도 나는 여전히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이름만으로
환해지는
대명동

밝아지고 싶을 땐 대명동大明洞으로 가세요

금방 볕이 볼에 확 쏟아져 내릴 곳. 발음 할 때마다 입속에서 병아리 같은 게 꼬물꼬물 튀어나올 것 같다. 대명동은 대구의 큰 산인 앞산 산허리에서 아랫마을로 이어지는 동네인데,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길이 아름다워서 봄이면 사람들로 꽤나 붐빈다. 나는 대명동에서 인생의 첫발을 디뎠다. 은유나 비유가 아니라 정말 물리적으로, 첫걸음을 대명동 흙 위에 디뎠다. 엄마의 이야기에 따르면 봄날이었다. 동네 화단에 개나리가 만개했는데 내가 자꾸 꽃 쪽으로 손을 뻗었다고 한다. 말랑말랑한 아기의 손과 막 피어난 개나리. 그 조합이 너무 예뻐서 엄마는 보행기에서 아기를 내려주었다. 그렇게 나는 대명 6동의 화단 위에서 ‘내 인생의 첫걸음’을 디디게 되었다.

볕이 참 좋았지. 그 동네, 낮엔 참 환했지. 엄마의 말을 들으면, 90년대의 볕을 다 본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내 이름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대명동 사는 명재. 명明자가 있다고. 어쩌면 그것이 생의 어둠을 밝혀줬다고. 최근 대명동에는 많은 카페와 식당이 들어섰지만, 사실 이 동네의 매력은 오래된 골목길에 있다. 집 앞에는 할머니들이 아무렇게나 놓아둔 화분이 있다. 꽃상추 옆에 샐비어, 금잔화 옆에 민들레. 쑥쑥 크게 웃자란 화분의 생태를 보는 것도 운치있다. 소담한 양옥집 담장과 감나무를 스치며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목덜미로 볕이 확 쏟아진다. 바로 그때 대명동의 이름을 실감할 수 있다. 살을 넘어 마음에 닿는 빛이다.

#납작만두와
반월당

반월당에만 가면 눈물이 난다.

예전에 부모님께서 여기에 분식집을 하셨다. 동아쇼핑 맞은편 아주 작은 가게. 지하철 공사가 한창이던 때라 정말 복잡했는데, 그 틈바구니에서 엄마와 아빠는 고슬고슬한 김밥과 우동과 납작만두를 만드셨다. 밤 늦도록 가슴을 졸이며 만두를 굽고 김밥을 말며 하루를 버텼다. 동생과 나는 종일 엄마를 기다리곤 했는데, 가끔은 동생 손을 잡고 모험을 떠났다. 아이들의 목적지는 언제나 반월당.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가게로 가는 길. 형아, 왜 반월당은 반월당이야? 모르겠어. 옛날에는 반달이 크게 떴나 봐.

한참을 걸어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 내리면 주변은 고요한 어둠에 잠겼고, 길 건너엔 엄마의 가게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커다란 달구벌대로를 횡단하면서 엄마! 하고 폐가 터지도록 크게 외치면, 새파랗게 젊은 당신이 우리를 보았다. 그리고 꼭 안아서는 자리에 앉혔다. 아빠는 늘 납작만두를 구워주셨다. 자글자글 쌀눈유로 곱게 구워 뜨거운 접시에 담아주셨다. 볼이 터지도록 만두를 밀어 넣으며 그렇구나! 갑자기 동생이 말했다. 뭐가? 형아, 반월당이 왜 반월당이냐면, 이거 봐 납작만두가 반달 모양이잖아. 엄마 아빠 가게 때문에 반월당인 거야.

#약전골목
떡전골목

눈, 비, 새, 꽃, 손, 시, 별, 달, 물, 뼈, 꿈. 한 글자로 이루어진 말은 묘하게 자립적인 힘과 기운을 지니고 있는데, 이 중 ‘약’과 ‘떡’은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발음하는 순간 뱃속이 따뜻해지고 기운 없던 사람도 몸을 일으킬 것 같다. 약전골목. 떡전골목. 중얼거린다. 그러다 보면 리듬감이 힙합 못지 않은데. 놀랍게도 이 말이 대구에서는 나란하게 놓인다. 약과 떡. 떡과 약. 반월당에는 두 골목이 자매처럼 나란히 있다. (물건을 싸게 판다는 뜻인) 염매廉賣 시장에는 떡전골목이 김을 펄펄 내며 들어서 있고, 골목을 지나면 순식간에 한방의 향기가 코끝에 닿는다. 냄새만 맡아도 온기가 도는 것 같은 향. 온갖 약으로 가득했던 약전골목. 이 두 길이 이어져 있다는 것이 내게는 마법보다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두 골목은 ‘가장 동양적인 것’을 나란히 배치해 둔 것 같다. 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겠지. 떡으로 가득한 골목이 있다니! 그 길을 지나면 톤이 바뀌고, 곧 한방의 세계가 펼쳐진단다. 믿을 수 있겠니? 몽실몽실한 떡의 거리를 구경하며 천천히 걷다 보면, 골목 끝에서 갑자기 향기가 날 거야. 그게 바로 ‘약방의 감초’란다.

두 골목은 사실 우리 할머니의 시내 필수 나들이 코스였다. 할머니는 늘 떡전골목에서 떡을 살피며 결정을 미루고 미루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야야, 함 봐봐라. 떡이 참말로 예쁘제? 뭐 먹고 싶노. 백설기 먹고 싶나, 약밥 먹고 싶나. 아니면 반들반들 한 송편 좀 사갈까.” 어린 나는 “둘 다!”를 외쳤다. 할머니는 활짝 웃으시며 주렁주렁 떡을 사서 서비스로 받은 송편을 내 입에 쏙쏙 넣어주셨다. 그리고 약전골목으로 갔다. 그곳에는 할머니의 친구, 할머니의 언니, 할머니의 동생들이 수두룩했다. 약방에서는 그냥 한나절이 지나간다. 나는 커다란 나무 약재함을 보다가 저울을 구경하다가 약초를 슬쩍 만져보다가 그조차도 지겨워지면 할머니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 초여름, 나는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이었다. 떡과 약이 가득 든 비닐 봉지는 자꾸만 귓가에 바스락거리고. 그렇게 할머니 등에 업힌 채 여름은 천천히 오고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나는 하지 못했다.

#시적인 길

시詩라는 글자는 파자破字해도 매력적인 뜻풀이가 가능하다.

시詩라는 글자는 파자破字해도 매력적인 뜻풀이가 가능하다. 그러니까 시는 말言의 사원寺이다. 고요를 꿈꾸고, 삶을 넘어서기를 감히 한번 꿈꿔 보는 말. 그래서 시는 때로 소박한데 때로는 벚꽃보다 화려하다. 이 이율배반이 시의 멀미나는 아름다움이다. 대구에도 이런 시적인 길이 있다. 반월당에서 청라언덕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곳은 통행이 많은 곳인데, 역으로 ‘최상급의 고요’를 선사한다. 우선 이 고요를 맛보기 전에 꼭 들러야 할 곳이 하나 있다. 바로 이상화 시인의 고택이다. 조그마한 목조건물로 볕이 넉넉하게 들어오고, 작은 마당에는 석류나무와 감나무가 있다. 그 나무를 보며 멍하게 있는 것도 참 좋다. 툇마루에 앉아서 지나간 시절의 시인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고택을 나와 일 분만 걸으면, 계산성당이 있다. 나는 동성로 나 교동에서 시간을 보내다 마음이 소란스럽게 느껴질 때, 곧장 이곳으로 간다. 성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외부는 멀어진다. 긴 의자에 드문드문 앉아 기도하는 사람들, 그리고 기적 같은 고요. 나는 거기서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성당 맞은편으로 너무나도 아름다운 길이 있는데, 이곳은 봄이나 여름에 반드시 가야 한다. 이름부터 이미 사람을 푸르게 빚는 길, 청라靑蘿언덕이다. 푸를 청에, 담쟁이를 뜻하는 라가 합쳐진 말. 언덕을 오르는 길은 계단으로 되어있는데, 마지막 계단에 올라서면 정말이지 감동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 개화기에 선교사들이 터를 잡았던 주택들이 아름답게 들어서 있다. 그 언덕 위에서 사방을 보고 있으면 짙푸른 풍경으로 폐가 물들 것 같다. 눈을 감으면 잎 스치는 소리가 가득하다.

#약속의 장소

단순하고 소박하던 때가 있다.

약속만으로 사람을 만날 수 있던 때.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흔하지 않던 시절, 대구 사람들에게 ‘약속의 장소’는 다음과 같이 목록화 될 수 있었다. 가장 빠르게 만나서 동성로 중심으로 가고 싶은 사람들

“대백(대구백화점) 앞에서 만나재이.”
옷을 좀 구경하거나 동성로를 촘촘히 걸어볼 사람들
“중파(중앙파출소) 앞에서 보자.”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들
“한일극장(혹은 아카데미) 앞에서 만나.”
이제 막 시작하는 어르신 연인들
“오늘 저녁에 향촌동 앞에서 보입시더.”

한번은 다른 지역에 살다가 대구에 살게 된 학생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는 대구에 와서가장 당황스러웠던 게, 애들이 자꾸 “중파 앞에서 봐!” 그러는 거예요. 중파가 뭐지 싶어서 찾아보니 중앙파출소더라고요. 이미 사라진 파출소였는데, 대구 사람들은 그 자리를 다 알고 있더라고요.” 어떤 곳은 사라지지만, 마음에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얼마 전엔 동성로 대구백화점이 문을 닫았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은 닫히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에겐 그 거리가 있고 그때 만난 사람들이 마음에 있다.

#나의 첫 책,
그리고
첫 수업

중앙파출소 옆에는 대구에서 가장 큰 서점인 ‘제일서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기다릴 때 이곳에서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 시를 쓰고 싶다고 마음먹은 날, 나는 아버지께 시 쓰기를 어디서 배울 수 있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제일서적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서 한참을 뒤적이던 우리는 오규원 시인의 <현대시작법>이라는 책을 샀다. 그 책이, 시와 관련된 내 인생의 ‘첫 책’이었다. 당시에는 아무런 기대도 없이 샀는데, 대학에서 맨 처음 시 창작 수업을 듣던 날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수업 교재는 출간된지 꽤 되었지만, 시 창작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책 하나를 읽을 거예요. 그 책은 오규원 시인의 <현대시작법>입니다.”

#굴 끝에는
강이 흘러요

경대병원을 지나 삼덕동으로 이어지는 길을 좋아한다.

경대병원을 지나 삼덕동으로 이어지는 길을 좋아한다. 맛집도 많고 좋은 카페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이 길 끝에 신천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신천을 자주 산책했는데, 어렸을 때 신천 옆에 살기도 했고 친구들이 모두 신천 주위에 살았다. 반짝이는 그곳을 참 좋아했다. 삶이 빛나지 않아도 강이 빛나서 좋았다. 보통 나는 수성구 상동에서 출발해 칠성교까지 걸었다. 상동교, 중동교, 희망교, 대봉교. 지금도 줄줄이 다리의 이름을 기억하는데 그 모든 다리를 소중한 사람과 걸었다. 삶이 막막하고 답답할 땐 한참 울면서 일렁이는 강물을 보았다. 그래서 내게 신천은 일종의 ‘기준’이 되었다.

태어나 처음 서울에 갔던 날, 전철을 타고 가다가 한강을 보았다. 갑자기 시야가 트이면서 커다란 강물이 보였다. 이게 강이라고! 바다가 아니라? 놀란 나는 입을 벌렸다. 신천을 열 개쯤 붙이면 한강이 되겠네! 그때 나는 한강도, 신천을 기준으로 헤아리고 있었다. 여전히 신천은 아름답게 흐르고 있다. 신천은 한강보다 훨씬 작지만, 수달이 있고 곳곳에 추억이 있다. 내가 신천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삼덕동 끝에서 신천으로 이어지는 조그마한 굴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처음 데이트하던 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는데 도무지 말이 잘 나오지 않아서 나는 강이나 보자고 말했다. 그때 우리는 굴로 갔는데, 들어서자마자 숨이 막혀버렸다. 굴 끝에 너무나도 찬란하게 신천이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굴 끝에는 버드나무가 흔들리고 있었고 그 끝에 닿으면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았다. 늘 걷던 곳도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빛나는 정면을 바라보면서, 그때 우리는 아무 말없이 이미 손을 잡고 있었다.

#어제

대구 종로에 있는 만두전문점 영생덕은 우리 가족의 오랜 단골집이다.

대구 종로에 있는 만두전문점 영생덕은 우리 가족의 오랜 단골집이다. 단골이었던 친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데리고 이곳에 갔고,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동생을 데리고 이곳에 갔다. 울면 한 그릇, 찐만두 하나, 군만두 하나. 이것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메뉴다. 어제 나는 부모님 손을 잡고 종로에 가서 군만두를 먹었다. 입이 반질반질해진 우리는 재스민차를 마시고 참 잘 먹었다, 행복하다, 중얼거리며 오래된 그 길을 다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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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성로점

25년 5월 1일 오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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