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공유하는 원칙을 만들 수 있을까
야나이 이타주의라고 하는 사고방식과 행동에 대해서는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타주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탈리 이타주의가 행동의 중심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에 대한 원칙을 성공적으로 공유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볼 만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법에 의한 통치입니다.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만, 유럽연합이 관련 법률을 통합하고자 했습니다. 유럽연합 각국이 힘을 모아 공동의 원칙을 만들고자 한 거죠. 유럽연합에 소속된 인구가 약 4억 5,000만 명 정도입니다. 전체 인류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숫자입니다만 공동의 원칙을 가짐으로써 작다고만은 할 수 없는 통합이 이루어졌습니다. 시장이 글로벌화되면 각각의 사고방식과 진행방식에 대한 글로벌화가 필요합니다. 지속가능하고 개방적인 시장은 상품의 글로벌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물론 법제도를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패스트리테일링과 경쟁업체가 함께 모여서 원료의 취급과 노동 환경 등에 대해 합의를 이루고 이를 공유하는 원칙을 만들어서 기업활동에 적용하는 것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나 행정기관이 아닌 기업에서 솔선수범하여 시작하는 것입니다.
야나이 저는 원칙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어패럴 기업만 모인다고 해도, 관련 산업에서 계속 이어져온 기존의 견해가 반영되고 결국 자신들의 권리만을 지키려 하지 않을까요? 일본인은 정해진 틀에서 열심히 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공동의 원칙을 정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경영자가 많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인은 ‘윗사람’의 감독과
지도에 따라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국가가 제시하는 목표나 조건의 틀 안에서 노력하기만 하면 머리 아프게 직접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정부도 기업을 보호하며 사업을 장려한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도 궤도를 수정할 수 없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자유와 종신고용
야나이 프랑스에서는 불평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아탈리 역시 세금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세율은 유럽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국민들도 불평등을 해결하고 건강과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당연한 대가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로 세율이 높습니다. 대신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받습니다. 높은 세금은 이타주의의 시스템화라고 할 수 있으며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반영한 원칙입니다. 반대의 국가가 미국입니다. 세율이 낮죠. 그래서 미국에서는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습니다.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는 이산화탄소 저감 문제에 있어서는 제품에 대한 탄소세 도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조 분야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수출입과도 관련된 문제이므로 하나의 국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겠죠. 특히 글로벌 기업이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야나이 회장님이 말씀하신
문제는 국가 차원에서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고 국제적인 원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야나이 보호주의와 집단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각지의 기업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한다는 기본 전제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먼저 원칙을 정하고, 모두가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지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세금 부담이 그다지 크지 않았는데,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의료와 사회복지에 사용하는 재원이 부족해지며 이에 따른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아탈리 프랑스는 여성 1인당 평균 출산율이 1.9명입니다. 일본은 1.4명이죠. 그리고 유럽에서는 대부분의 여성이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또한 같은 회사에서 정년까지 일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유럽의 몇몇 국가에서는 평균 이직 기간이 3 ~ 5년입니다. 평생에 걸쳐 교육과 훈련을 받고 능력을 키웁니다. 축구로 예를 든다면, 팀이 중요하지만 선수 개개인의 능력과 잠재력이 결실을 맺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며, 이적을 통해 활약할 기회를 넓힘으로써 개인의 능력을 보다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직업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장점을 발견하고 평생에 걸쳐 향상시킬 수 있는 능력을 찾아 발전시키는 일은 사회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유연함을 갖춘 사회는 월급만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장까지 제공한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개인이 평생에 걸쳐 자신의 실력을 갈고 닦는 일은 결국 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일입니다.
야나이 아탈리 박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일본에서도 종신고용제도가 이미 역할을 다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직을 통해 개인의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종신고용이 회사에게 있어서나 개인에게 있어서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회사가 이직을 반복하는 개인이 잠시 모이는 곳이 된다면 집단지식이나 암묵지식 등이 만들어지기 어려워집니다. 일한다는 것, 무엇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인간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이 깊어짐에 따라 개인의 능력이 발전하고 회사를 받쳐주는 힘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수한 인재가 들어온다고 해서 항상 곧바로 활약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회사로 옮기면 상당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해야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의 목적과 회사의 목적이 일치하여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다면 최고의 힘이 발휘되지 않을까요? 축구에서 협동작전을 펼치듯이 모두가 골인을 목표로 경영자의 자세로 일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종신고용에 대한 생각은 유럽인으로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고는 생각합니다.
아탈리 야나이 회장님의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이 유럽에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본인 중에도 종신고용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게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 않습니까? 자유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면 아무래도 위험이 뒤따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어디에서 어떻게 일할 것인가는 개인의 자유라고 보는 시각이 세계적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평생 소비자’라는 개념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야나이 평생 소비자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가능할 수 있는 기업활동이 뒤따라주지 않는다면 불가능하겠죠. 소비자에게도 무엇보다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신고용에 대해 한 마디 덧붙이자면, 무조건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름뿐인 종신고용은 오히려 해롭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기업의 자유가 기본 원칙입니다. 다만, 축적된 지식이 집단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기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바로 그때 종신고용의 저력이 발휘된다는 의미입니다. 기업활동은 개개인의 힘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고보니 최근 공교롭게도 프랑스인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요, 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프랑스인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탈리 세계로 진출하여 그곳에서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가치를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일본인도 프랑스에 더 많이 와서 활동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야나이 개인이 자유롭게 살면서 국제적으로 활약하고, 일하고 있는 지역사회와 공동체의 활동에 참여하고, 사회에 공헌함으로써 전쟁이나 분쟁이 없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생각하면 기업의 역할과 책임이 더욱 막중하게 느껴집니다.
아탈리 21세기가 요구하는 기업, 또는 어패럴의 미래에 대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꼭 다시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