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ing the Future

Text by Kosuke Ide Coordination by Yumiko Urae

Special thanks to Mark Adams, Vitsoe, Jo Klatt, Design + Design Hamburg,
Dieter Rams and Ingeborg Rams Foundation, Supervion

전후 독일에서부터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전설적인 산업 디자이너 디터 람스(Dieter Rams). 보다 좋은 삶을 위한 제품을 만들었던 그의 디자인 철학 “Less, but Better”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BRAUN P&G
Radio-audio Phonosuper SK 4
Braun, 1956

우측 이미지의 라디오-오디오 콤비네이션 SK4 (Radio-audio Phonosuper SK 4)는 디터 람스와 울름 조형 대학(Ulm School of Design)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한스 구겔로트(Hans Gugelot)의 공동작업으로 탄생했습니다. 금속판에 우드로 측면을 감싼 케이스와 아크릴 커버, 그리드를 따라 배열된 버튼과 다이얼의 위치까지 다 짜맞춰진 이 디자인은 모던하면서도 어느 곳 하나부 족함이 없습니다.

‘ 오래됐지만 좋은 디자인’ 혹은 ‘오래되어서 좋은 디자인’

과거에 만들어진 것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지지를 받을 때, 보통 그 이유는 크게 이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하지만 디자이너 디터 람스의 경우는 조금 특별합니다. 그의 작품은 ‘오래된 것과 새 것’ 의 대립을 의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좌측 페이지의 라디오-오디오 콤비네이션 SK4가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인 1956년에 처음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신선한 충격을 받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디터 람스는 브라운(Braun)에서만 40여년을 재직하면서 라디오와 계산기, 전기 면도기, 라이터, 시계, 푸드 프로세서 등 300개 이상의 제품을 디자인했는데, 그 모든 제품이 믿기 힘들 정도로 시대를 초월한 세련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디터 람스가 전 세계 산업 디자인에 미친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등 애플(Apple)사의 제품 디자인을 총괄한 조니 아이브 (Jony Ive, 2019년 퇴사)가 람스의 디자인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올해로 88세를 맞이한 디터 람스는 디자인 세계에서 ‘살아있는 전설’ 이라 불리기에 충분하지만 사실 그는 그런 거창한 칭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억지로 밀어붙이지 말고 항상 자제할 것. 보여주기 위한 무언가를 만들지 말 것” 이것이야 말로 그가 평생을 추구해 온 디자인에 관한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디터 람스는 1932년 독일 비스바덴(Wiesbaden) 에서 태어났습니다. 숙련된 가구 장인이었던 그의 할아버지 덕분에 그는 어린 시절부터 디자인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습니다. 1947년에는 15세의 나이에 비스바덴 예술학교(지금의 라인-발 응용과학대학, RheinMain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에 입학해 건축 설계를 공부했습니다. 당시 독일은 2차 대전의 패배 이후 새롭고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도시 재건에 열중하던 시기였습니다. 때마침 전 세계의 건축과 디자인 분야도 바우하우스 (Bauhaus school)를 통해 널리 알려진 현대 산업화 사회에 어울리는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형태의 독일 모더니즘에 새로이 주목하였으며, 그 흐름은 1953년 개교한 울름 조형 대학(Ulm School of Design)으로 계승되었습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한 디터 람스는 이후 프랑크푸르트의 한 건축 사무소에서 몇 년간 근무한 뒤, 이곳에 본사를 둔 ‘브라운’ 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독일 최고의 가전제품 제조업체인 브라운은 1951년 설립자 맥스 브라운(Max Braun)의 사망 이후 두 아들인 엘빈(Erwin)과 아르투르(Artur)가 경영을 이어받은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30세와 26세의 젊은 나이로 미래 지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던 두 형제는 현대의 생활에 맞는 보다 좋은 제품의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1955년부터 울름 조형 대학(Ulm School of Design)과 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때가 바로 브라운 디자인 팀의 디터 람스가 한스 구겔로트, 오틀 아이허(Otl Aicher)와 같은 학교의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 프로젝트를 주도하던 때입니다.

디터 람스는 브라운이 기능적인 모더니즘 디자인으로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던 때인 1955년, 뒤셀도르프 국제 라디오 전시회에서 SK1/SK2 탁상용 라디오를 처음 선보였으며, 다음 해에는 한스 구겔로트와 함께 SK4 라디오-오디오 콤비네이션(SK4 radio-phonocombination) 을 디자인했습니다. 이 제품은 당시 가구의 일종으로 간주된 턴테이블을 오디오 시스템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카테고리로 발전시켜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턴테이블과 라디오의 조작 버튼이 상단에 위치하고, 보통은 숨겨 놓기 마련인 스피커와 조작 다이얼을 오히려 눈에 띄게 배치한 디자인이 특징입니다. 또 아름다운 흰색의 판금 케이스에는 음성 출력과 통기성을 겸한 트림 슬릿을 마련했으며, 커버는 노이즈가 발생하기 쉬운 금속이 아닌 투명 아크릴 커버로 마무리했습니다 (지금은 당연한 방식이지만 당시에는 소설에 가까운 이야기였다고 하죠). 철저한 계산으로 완성한 미니멀하고 모던하며, 기하학적인 디자인은 당시 라이벌 회사가 ‘백설공주의 관’ 이라고 별명을 붙일 정도로 엄청난 임팩트를 주었습니다.

그 후 디터 람스와 그의 디자인 팀이 만든 우아한 디자인과 최첨단 기술의 결합 덕분에 브라운은 점점 더 유명해졌습니다. 산업 분야에서 이룩한 독일의 성장과 함께 브라운도 전 세계 120개 이상의 나라에 수출을 하고, 1958년에는 뉴욕 현대미술관에 다수의 제품을 전시하기 시작했죠.

Ten principles for good design by Dieter Rams
디터 람스의 "좋은 디자인을 위한 10가지 원칙"

디터 람스의 디자인 철학을 요약한 "좋은 디자인을 위한 10가지 원칙"은 지금도 수많은 디자이너들에게 금언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가 과거에 작업한 제품들 모두 이 원칙을 벗어나지 않으며, 실용적이고 간결하며 이해하기 쉬운 디자인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브라운에서 오랫동안 함께 일한 디트리히 루브스(Dietrich Lubs)와 같이 만든 ET66 계산기는 기능에 따라 갈색, 노란색, 녹색, 빨간색으로 구분한 둥근 버튼과 타이포그래피, 레이아웃을 통해 직관적인 사용을 돕습니다. 장황한 매뉴얼이 필요 없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디터 람스의 사상은 애플의 제품 디자인에서도 계승되고 있습니다.

1959년에 선보인 TP1은 디터 람스가 스스로 ‘최초의 워크맨’ 이라고 부르는 휴대용 스테레오 시스템입니다. T4 휴대용 라디오와 미니 턴테이블을 결합한 TP1은 7인치 크기의 레코드판보다 작고, 오로지 직사각형과 원으로만 구성된 단순한 디자인입니다. 하지만 TP1에서 놀라운 건 디자인만이 아닙니다. 심지어 스피커까지 내장한 작은 TP1은 다른 턴테이블과 달리 아래에서 올라온 바늘에 의해 레코드가 재생됩니다. 자연스럽게 위에서 내려놓는 보통의 방식과 달리 이 경우에는 소리를 내는 바늘의 압력이 섬세하고 정확하게 계산될 필요가 있어 엔지니어와 디자이너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합니다. 당시 브라운은 부서나 직책에 관계없이 직원들이 자유롭고 활발히 토론할 수 있는 열린 분위기의 조직이었다고 합니다.

디터 람스가 최고 디자인 책임자로 오른 1961년에는 그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급성장하는 소비자 사회에 맞춰 업계 역시 인지도 있는 스타를 만들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브라운의 제품 모두를 디터 람스가 만든 것은 아니며 그의 단독 디자인도 아니었습니다. 이는 디터 람스와 그의 팀 그리고 숙련된 여러 디자이너가 힘을 합해 완성한 결과물이었죠. 람스는 항상 함께 일한 모든 디자이너가 회사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자신의 활동을 이론적으로 고찰하고 그 뒤에 있는 디자인 원칙을 알릴 수 있는 다양한 강연에 참여합니다. 1985년에는 워싱턴 D.C.에서 열린 국제 산업 디자인 단체 협의회에서수십 년 동안 쌓아온 자신의 아이디어와 노하우를 정리한 ‘좋은 디자인을 위한 10가지 원칙 (Ten Principles for Good Design)’ 을 발표했죠. 마치 그의 디자인처럼 간결하게 정리된 이 10가지 원칙에는 세계화라는 시대의 변화와 오로지 제품 차별화만을 위한 형태와 색의 과용, 점점 고갈되는 자원과 혼돈으로 가득한 세상, 그리고 갈수록 비대해지는 소비 사회에 대해 오랫동안 홀로 고민해온 디터 람스의 자문과 제언이 담겨 있습니다.

디터 람스의 관점에서 ‘좋은 디자인’ 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1. 혁신적이다. 2. 제품을 유용하게 한다. 3. 아름답다. 4. 제품을 이해하기 쉽게 한다. 5. 불필요한 관심을 끌지않는다. 6. 정직하다. 7. 오래간다. 8. 마지막 디테일까지 철저하다. 9. 환경을 생각한다. 10. 디자인은 가능한 한 최소화한다.

오로지 재밌고 신기하거나 흥행만을 위한 제품을 만드는 데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불필요하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저렴한 제품들만 판매될 겁니다. 그리고 이런 제품은 유행에 밀려 금방 버려지기 마련이죠. 이 과정에서 자원은 소모되고 환경이 오염되며 쓰레기가 쌓입니다. 디터 람스는 이러한 현대사회는 잘못된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소비자의 삶을 더 좋게 만드는 디자인은 가능한 중립적이고, 내구성이 뛰어나며, 사용자가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백을 갖추며 절제해야 합니다.

디터 람스가 자신의 책 제목으로 쓴 ‘Less, but Better’ 이라는 모토는 그의 철학을 가장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죠. 바우하우스를 이끌던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가 즐겨쓰던 ‘Less is more,’ 과 비슷하지만 환경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할이 더해져 있습니다. 과거 어느 때보다 모든 것이 더 빠르게, 대량으로 소비되고 있는 정보화 시대인 지금, 디터 람스가 남긴 ‘진정한 보편성을 갖춘 제품’ 에 대한 간결한 메시지가 다른 어떤 디자인보다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합니다.

1970년, 사무실의 디터 람스. 1955년부터 1997년까지 ‘브라운’에 소속되어 일하는 동안 람스는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들뿐만 아니라 기술 부서, 영업 부서와도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며 디자인을 했습니다.그는 디자인할 때 컴퓨터를 사용하는 대신 항상 손을 움직였고, 모든 디자인은 커다란 트레이싱지에 부드러운 연필로 그려지는 스케치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Photography: bpk / Abisag Tüllmann / distributed by AMF

©︎BRAUN P&G

쇼룸 스케치, 건축가로 브라운에 입사한 후 디터 람스가 맡은 첫 번째 임무(1955년)

©︎BRAUN P&G

위의 세 이미지 중 가장 우측에 있는 것이 “월드 리시버(World Receiver)” T1000을 위한 스케치(1963년). 좌측 두 개의 이미지는 휴대용 TV FS1000를 위한 스케치(1962년).

Dieter Rams | 디터 람스
Industrial Designer
1932년 독일 비스바덴 출생. 비스바덴 예술학교(현재는 라인마인 응용과학대학)에서 건축 설계 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오토 아펠 건축 사무소를 거쳐 1955년 ‘브라운’에 입사, 1961년 디자인부 수석, 1968년 총괄 디자인 책임자로 취임했습니다. 세상에 기여한 그의 유명한 작품은 무수히 많습니다. 1959년부터 현재까지 가구 제조, 공급 업체인 비초에(Vitsoe)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1981년부터 1997년까지는 함부르크 미술대학(University of Fine Arts of Hamburg)에서 산업 디자인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그는 런던 산업 예술가 및 디자이너 협회(Society of Industrial Artists and Designers, SIAD)의 메달을 포함하여 다수의 상을 수상했으며, 독일 디자인 카운슬(German Design Council)의 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1997년 ‘브라운’을 퇴사한 후에는 강연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Personal Timeline

1932
독일 비스바덴에서 출생
1947
비스바덴 예술학교 입학
1955
브라운 입사
1968
브라운에서 디자인 책임자로 승진
1981
함부르크 미술 대학 교수로 취임
베를린에서 ‘디자인: 디터 람스 &’ 전시 개관
1997
브라운 퇴사
2018
다큐멘터리 영화 ‘람스(Rams)’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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